나에게 최고의 카페가 되려면
배경
- 책 <일의 감각> 읽으며 간단한 노트 관련 실습 활동의 일환으로 이 글을 쓰려고 한다.
- 어떤 소재가 좋을까 고민. 새로운 카페나 서점 가는 걸 좋아하는데 나에게 좋은 카페란 무엇인지 고민하면 꽤 깊게 내 '감각'을 파고들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. 카페와 서점은 모두 '공간'이지만, 공간은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자칫 잘못하면 글이 너무 추상적이고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어 '카페'가 여러모로 가장 적당하리라 기대했다.
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접근 방법 생각해보기
- 일단 카페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. 각자 생각하는 카페가 다르기 때문이다. 내가 '어떤 건 카페이고 어떤 건 카페가 아니지?'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다.
- 그렇다고 너무 추상적으로 시작하거나 좋은 질문을 찾기 위해 시간을 쓰면 진행이 너무 더뎌 지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.
- 최근에 갔던 카페들을 떠올리며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웠는지 작성해보면 어떨까? 괜찮아 보인다.
- 책 <주식하는 마음> 읽으면서 노트에서는 좋은 질문은 '대답할 수 있는 질문'이어야 하고, 그 대답은 '틀릴 수 있어야'한다고 했다. 나의 질문들은 좋은 질문인지 질문해보자.
예: 내가 지금 있는 카페 A
- 다양한 형태로 앉을 수 있다.
- 'ㄷ'자로 직원이 있는 주방인 듯한 공간을 감싸는 바 테이블
- 벽쪽에 붙어 2인이 마주보고 앉는 레스토랑 스타일 테이블
- 창가에 붙어 2인이 마주보고 앉는 소파 테이블
- 좁고 긴 복도식으로, 한쪽 통창을 바라보고 앉는 바 테이블
- 실상 나는 통창을 바라보는 바 테이블에만 앉아봤다. 그런데 이 자리가 좋다.
- 의자와 책상의 높이 차이가 적당하다. 나는 앉은키가 큰 편이라 책상이 적당히 높은 게 좋다.
- 의자도 적당히 편안하다. 등받이가 있고 바닥엔 쿠션도 있다.
- 바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. 약간의 거리도 보인다. 다만 15m 앞에 높은 건물이 있어, 창밖 풍경은 그리 넓지 않고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.
- 카페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.
- 볼륨이 듣기에 적당하다.
- 내 취향의 음악이 나온다.
- 커피 맛은 너무 셔서 싫지만 중요하지 않다. 어떻게든 마실 수 있고, 가격만 적당하면 개의치 않는다.
추상화 해보자면
- 카페는 여러 사람이 들어가서 상호작용하는 복합 공간이다.
- 나는 카페에서 기대한다.
- 나는 카페에서 앉기를 기대한다.
- 서 있는 카페는 가보지도 않았고 (존재하기는 할까?) 현재의 나는 카페에서 서 있기 보다 앉아 있기를 기대한다.
- 그래서 의자와 테이블이 중요하다.
- 내가 원하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.
- 랩탑 작업
- 책 읽기
- 함께 카페 온 사람과 대화
- 종이 노트에 글/그림
- 나는 카페에서 앉기를 기대한다.
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것들은?
- 종합해보면, 카페에서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.
- 같이 온 사람과 대화하기
- 마음의 여유(풍경 감상, 차분한 분위기)
- 집중 작업(랩탑, 독서)
깊게 파고들기
그것들이 나에게 왜 중요한가?
- 앞서 꼽은 세 활동은 사실 집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. 그렇다면 왜 굳이 카페인가? 활동마다 이유가 다르다.
- 대화: 대화 그 자체에 집중하려고
- 사람을 실물로 만나는 자리라면 카페가 낫다. 반대로 온라인 미팅이라면 오히려 집이 낫다. 집이 더 조용하고 인터넷도 안정적이라 환경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.
- 밥집에서 만나면 결국 밥에 집중하게 된다. 카페는 음식이 아니라 대화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. 그래서 사람과의 대화에는 카페가 더 맞다.
- 집중 작업(랩탑, 독서): 집을 벗어나야 집중되니까
- 집은 너무 익숙한 공간이다. 그래서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집중이 안 될 때가 많다. 집을 벗어나 특정 활동에 전념할 장소가 필요한데,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이 카페였다.
- 집중을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있다. 정신을 각성시키는 카페인 음료,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, 편안한 의자와 책상의 조합. 이 요소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집중이 방해된다. 풍경이나 분위기도 마찬가지여서, 거슬리는 구석이 있으면 불편하다.
- 마음의 여유(리프레시, 환기): 장소를 바꿔 답답함을 풀려고
-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 때가 있다. 그 답답함을 풀려고 카페에 가거나 산책을 한다.
- 장소를 바꾸는 것 자체가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 준다. 이때는 카페의 풍경이나 혼잡도 같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.
- 그리고, 남이 있어야 한다
- 카페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. 남들이 함께 있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, 그게 내 마음을 바르고 가지런하게 잡아준다고 믿는다. 그래서 아무도 없는 텅 빈 카페는 오히려 별로다.
카페는 무엇이며 어떤 양상을 띄는가?
현대 카페는 왜 생겼나: 제3의 장소
- 카페는 처음부터 "커피를 파는 곳"이 아니었다. 17세기 런던 커피하우스는 'penny university(페니 대학)'라 불렸다. 커피 한 잔 값인 1페니만 내면 신분과 무관하게 학자, 상인, 정치인의 토론에 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. 1페니는 커피값이자 토론장 입장료였다. 훗날의 로이드 보험과 런던 증권거래소도 이런 커피하우스에서 자라났다.
-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1989년 책 The Great Good Place에서 이 공간을 "제3의 장소(third place)"라고 이름 붙였다. 제1의 장소는 집, 제2의 장소는 직장, 제3의 장소는 그 둘 바깥에서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인 모임이 일어나는 공공 공간이다. 그는 이곳을 공동체 생활의 "닻"이라 불렀다.
카페는 어떻게 변해왔나: 작업실이 된 카페
- 스타벅스는 이 개념을 마케팅의 중심에 놓았다.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를 "집에서는 가족의 일부, 직장에서는 회사의 일부,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냥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장소"로 정의했다.
- 원격근무와 노트북 문화가 퍼지면서 카페는 "생산적 제3의 장소"로 진화했다. 2021년 한 연구(Mimoun & Gruen, Journal of Service Research)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일하는 이유를 둘로 정리한다. 하나는 집중력이다. 산만함은 적지만 사무실처럼 딱딱하지는 않다. 다른 하나는 사회적 연결이다.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비공식적인 책임감을 만든다.
- 한국에서는 이게 "카공족"이라는 말로 굳었다. 콘센트와 와이파이를 무료로 주고 오래 앉아 있어도 내보내지 않는 정책이 퍼지면서, 카페는 하루 종일 작업해도 되는 공간이 됐다. 통계청 기준 2022년 말 국내 커피전문점 수는 처음으로 10만 개를 넘었다. 편의점보다 많다.
사람들은 왜 카페에 갈까: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산다
- 소비자 연구가 반복해서 내놓는 결론은 하나다.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만 사는 게 아니라 공간과 그 안에서 얻는 집중·접촉·분위기를 산다. 공간이 자기와 맞으면 같은 음료라도 더 비싼 값을 기꺼이 낸다.
- 여기서 앞서 적어둔 한 줄이 떠오른다. 나는 "커피 맛은 너무 셔서 싫지만 중요하지 않다"고 썼다(카페 A). 한때 이게 좀 부끄러운 취향인가 싶었는데, 알고 보니 학계가 말하는 다수의 행동과 정확히 같았다. 나는 커피가 아니라 입장권을 사는 것이다. 400년 전 런던의 1페니처럼.
그래서, 나만의 역-체크리스트
- 올든버그의 제3의 장소에는 여덟 가지 특징이 있다. 중립 지대, 평등함, 대화가 주 활동, 접근성, 단골, 낮은 자세, 유쾌한 분위기, 집 같은 편안함. 그런데 이건 공동체를 위한 기준이다. 나는 카페를 주로 혼자 집중하러 간다. 그래서 이 기준을 어디서 따르고 어디서 벗어나는지 따져봤다.
| 올든버그의 제3의 장소 (공동체 기준) | 나의 최고의 카페 (혼자 집중 기준) |
|---|---|
| 대화가 주 활동 | 침묵이 주 활동 (사람과 함께 올 때만 대화가 주인공) |
| 단골과의 사교 | 익명의 군중 속 적당한 고립 |
| 집도 직장도 아닌 중립 지대 | 그대로 따름 (익숙한 집을 벗어나야 집중되니까) |
| 남들이 함께 있음 | 그대로 따름 (시선이 마음을 가지런히 잡아주니까) |
| 집 같은 편안함 | 그대로 따름 (편한 의자, 잔잔한 음악, 각성 음료) |
- 정리하면, 올든버그가 본 제3의 장소가 "함께 어울리는 공동체"라면, 내가 찾는 카페는 그 공간을 혼자 쓰는 쪽에 가깝다. 같은 제3의 장소를 정반대로 쓰는 셈이다.
그래서, 나에게 최고의 카페란
- 세 가지 활동(대화, 집중 작업, 마음의 여유)을 따라 들어가 보니, 그 밑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. 나는 집을 벗어나고 싶고, 동시에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. 집은 너무 익숙해서 나를 풀어지게 하고, 텅 빈 공간은 나를 흐트러지게 한다. 카페는 그 사이에 있다. 남들 속에 섞여 있되 말을 섞지 않는 적당한 거리. 그 거리가 집중을 만들고, 답답함을 환기하고, 마음을 가지런히 잡아준다.
- 올든버그의 말을 빌리면 카페는 집(제1의 장소)도 직장(제2의 장소)도 아닌 제3의 장소다. 다만 그가 본 제3의 장소가 "함께 어울리는 공동체"였다면, 나에게 그곳은 "혼자 집중하는 공동체"에 가깝다. 나는 커피 맛 때문에 가는 게 아니다. 400년 전 런던 사람이 1페니로 토론장 입장권을 샀듯이, 나는 한 잔 값으로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게 되는 자리를 산다.
- 그러니 나에게 최고의 카페란, 집도 직장도 아니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가장 잘 몰입하게 해주는 제3의 장소다. 나에게 카페는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자리에서,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게 해주는 곳이다.
참고 자료
- Ray Oldenburg, The Great Good Place (Paragon House, 1989; Marlowe & Company 재판 1997) - '제3의 장소' 개념 원전
- Historic UK, "English Coffeehouses, Penny Universities" - 17세기 런던 커피하우스와 'penny university'
- ICMR, "Starbucks – The Third Place" (마케팅 케이스 스터디); Perfect Daily Grind, "The third place: What is it & how does it relate to coffee shops?" (2021) - 스타벅스의 제3의 장소 채택, 슐츠 인용
- Mimoun, L. & Gruen, A. (2021), "Customer Work Practices and the Productive Third Place", Journal of Service Research - '생산적 제3의 장소'와 카페에서 일하는 이유
- 아시아경제, "'카공족' 환영하는 카페들" (2024-08-14) - 한국 카공족 문화와 장시간 체류 정책
- MBC 뉴스, "전국 커피전문점 수 처음으로 10만 개 돌파" (통계청 인용, 2024) - 2022년 말 커피전문점 10만 개 돌파
- Cogent Business & Management (Taylor & Francis, 2025), "Customer experience and satisfaction in coffee consumption" - 커피가 아니라 경험·공간을 산다는 소비자 행동
- 상세 출처·URL: (비공개)